[사진작가 정은택 의 시선] 분홍빛 가을에 머물다

핑크뮬리 사이로 스며든 고요,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는 가을의 풍경

▲“분홍빛 풀잎 사이에 잠시 머물러 보니 알 것 같았다./사진 정은택


가을 햇살이 나무 사이로 스며들고, 분홍빛 핑크뮬리가 부드러운 물결을 이루며 흔들린다.

짙은 나무 그늘과 연분홍 풀잎이 어우러진 풍경은 화려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가을의 정취를 전한다.

핑크뮬리 사이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풀잎에 둘러싸인 모습은 마치 자연 속에 잠시 몸을 맡긴 듯하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분주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앞만 보고 달릴 때가 많다.

해야 할 일에 쫓기고,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추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를 잊곤 한다.

그러다 문득 아름다운 풍경 앞에 서면 그동안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분홍빛 풀잎은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화려한 꽃처럼 강렬하게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모여서 만들어내는 색은 어느 꽃밭 못지않게 아름답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이와 같을 것이다.

특별히 빛나지 않는 평범한 날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간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단순히 눈앞의 풍경을 기록하는 일만은 아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마음으로 셔터를 눌렀는지 함께 담아내는 일이다.

오늘의 핑크뮬리는 내게 잠시 멈추어도 괜찮다고, 조금 천천히 걸어도 늦지 않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계절은 머물지 않고 지나간다.

분홍빛으로 물든 들판도 언젠가는 색을 잃고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을의 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며, 나 역시 마음 한구석에 작은 여유를 남겨본다.

<저작권자 ⓒ JD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은택 기자 다른기사보기